2월의 프랑스는 그다지 춥지 않다. 영하로 떨어지는 일은 매우 드물며 거의 8도 언저리의 온도를 유지하는 듯 보인다. 다만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늘 비가 말썽이다. 하루에도 비가 왔다 안 왔다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 우연히 날이 좋은 날, 파리 시내로 산책을 나갔다.
에펠탑과 에스카르고, 그리고 하나 더
오늘 외출 목적은 '출사' 즉, 그저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로써는 솔직히 사진 그자체의 목적보다는 누구가와 함께 한다는 '친목 다지기'의 목적이 더 강했다. 한국에서는 식구라는 표현을 쓴다. 이 식구라는 표현을 풀어 말하면 같이 밥을 먹는 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다른 한국인 친구와 더욱 견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점심을 같이 먹는 선택을 했다. 따라서 오늘의 일정은 에펠탑 - 점심식사. 조촐한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고 할 수 있다.
파리는 흐리기도 맑기도
처음 에펠탑이 있는 파리 중심 구에 도착했을 때는 위 사진처럼 날이 흐려서 당황했다. 게다가 사진을 찍으려하니 은근히 거슬리는 거중기. 2020년 2월 파리의 에펠탑 주변은 현재 공사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진을 찍으러 밑으로 내려가자 날이 갰다. 말이 되는가. 단 삼십 분만에 날씨가 바뀔 수 있다니. 확실히 외국의 삶은 외국에 와서 살아봐야 안다고, 이 기막힌 날씨에 나는 적응해버렸다. 아니, 적응보다는 무신경해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날이 정말 화창하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운이 잔뜩 있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국인가. 잘 모르겠다. 사진의 왼쪽을 보면 줄지어 선 나무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큐브 모양이다. 파리 관광지는 나무들을 전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잘라놔서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자뭇 기이함을 느꼈다.
에펠탑 주변은 에펠탑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과 싸인단들이 돌아다닌다. 기념품은 꽤나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경계할 필요 없다. 그러나 싸인단들은 다르다. Can you speak english?라며 영어로 말을 물어보고 대답해주면 뭐라뭐라 하면서 싸인을 유도한다. 신경이 쓰인 사이에 물품을 훔쳐 달아나기도 하며, 혹은 싸인을 해주면 기부금 명목으로 돋을 뜯어가기도 한다. 동양인들은 딱 봐도 여행객처럼 보이기에 많은 사기꾼들이 접근한다. 주의하자.
아참, 이러한 방법에 대처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프랑스에 익숙한 사람인 척 하는 법. 그게 뭐냐, Non merci, pardon(논 멕시, 빠흐동)이라고 말하며 손을 내저어주며 신경을 끄면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프랑스어로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뜻이다. 이 말만 프랑스인처럼 익숙하게 해도 사기꾼들이 쉬운 상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파리는 슬슬 꽃이 피기 시작했다. 벚꽃퍼럼 보이나, 나무기둥은 오히려 철쭉과 닮았다. 무슨 나무인지 전혀 모르겠다. 꽃을 보니 괜히 마음도 설레온다. 성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다소 더러워진 내 마음을 꽃이 산뜻하게 씻어준다.
에스카르고와 마그렛 드 까나드
요리를 기다리고 있으면 위 사진처럼 우선 빵과 식기를 서빙해준다. 빵은 우리나라에서 단무지를 주듯 계속해서 리필을 해 준다. 종은 바게트 빵이다. 하지만 파리는 바게트방마저 맛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카르고를 가져다줬다. 에스카르고는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프랑스어로 달팽이라는 의미이다. 즉, 요리 이름이 달팽이인 것. 그런데 웬 일 먹는 중 한 마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컴플레인을 넣어 봤자 처리가 어떻게 될 지 모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여 그냥 먹었다. 드디어 다들 궁금해할 질문이 나온다.
에스카르고는 대체 무슨 맛일까?
우선 달팽이 자체만 보자면,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맛이 난다. 바로 소라 고둥맛. 우리나라는 흔히 소라고둥 같은 해삼물을 접하지 않는가. 소라고둥과 골벵이와 무척 닮았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그렇담 무엇이 다른가? 바로 식감이다. 쫀쫀한 느낌이 있지만 골벵이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다. 만약 골벵이와 버터가 교배를 한다면 저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골벵이는 연거푸 씹어도 완전히 다 씹혔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데 반해, 달팽이는 조금만 씹어도 금새 풀어진다. 무척 맛있고 만족스러웠다. 거부감만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꼭 추천할 맛.
소스 역시 마음에 들었다. 미묘한 맛이 났는데, 내 주관적 견해로는, 크림 시금치나 바질페스토, 소금, 후츠, 올리브 오일인 듯 했다. 이 소스가 정말 마음에 들어 빵에 계속 찍어 먹어 엉트레만 맛봤음에도 꽤나 배가 찼다.
그리고 하나 더,
드디어 메인 음식이다. 바로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마그레 드 까나드(직역하자면 오리의 가슴살)
이 요리를 주문하면, 아 뿌앙, 비앙 뀌? 라고 물어본다. 아 뿌앙은 미디엄 레어쯤, 비앙 뀌는 웰던 쯤 된다. 나는 어떤 육유를 먹든 미디엄 레어를 선호한다. 그래서 재료 본연의 맛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며, 너무 굽는다면 고기의 질에 따른 차이를 별로 못 느낄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해봐야 좋은 고기와 안 좋은 고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저질 입맛이다.
마그레 드 까나드는 레드와인을 기반으로 한 소스가 끼얹어져진 채 감자와 함께 나왔다. 그 맛은 우리가 흔히 먹는 오리의 맛이다. 솔직히 첫 점을 맛봤을 때는 실망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오리 누린다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계 같은 경우 보통 구우면 맛있는 부위이지 덜 익혀 맛있는 부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리의 비계 부위가 거슬렸다.
하지만 세 점 이상 먹으니 오리의 누린내가 익숙해졌고, 오히려 오리 특유의 향이 없다면 아쉬울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냄새가 없다면 닭을 먹을 테니까.
마그레 드 까나드는 프랑스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음식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베스트 1이라는 것. 첫 점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으나 먹다보니 납득이 갔다. 사실 내가 여태껏 먹은 고기가 닭, 소, 돼지처럼 특유의 향이 거의 없는 식재료들기 때문에 낯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이후, 양, 토끼 등등도 순차적으로 맛 볼 생각이다.
간만에 기분좋은 날씨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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