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다람쥐 일기 3/대탈출편
우리집에는 콩떡이와 쌀떡이라는 데구가 산다. 데구는 쉽게 말하면 다람쥐같은 녀석인데 흔히들 편하게 칠레 다람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데구라고 하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쥐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구는 쥐보다는 다람쥐와 생태가 비슷한 녀석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날래다. 우리 콩떡이와 쌀떡이는 우리집에 온지 약 두 달 가량 된 것 같다. 이제 완전히 적응을 마친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가 나가고 싶을 때 벽에 구멍을 뚫고 나갔다가 자기 원하면 들어와버린다. 건방진 데구들이다. 철장 케이지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케이지며 은신처며 방목지며 플라잉 소저, 쳇바퀴 등, 쓸데 없는 돈을 많이 요구하는 녀석들이다.
지금 나를 올려다 보는 이 까만 녀석은 데구 콩떡이다. 이녀석의 식탐은 남달라서 나도 가끔 놀란다. 나도 먹는 거라면 빠지지 않는데, 이녀석 식탐 앞에서는 나조차도 한수 접고 들어간다. 이녀석은 배가 불러도 주는 음식은 족족 받아놓는다. 받고 어디 한 구석에 땅을 파고 묻어놓는다. 약간 나를 편의점 쯤으로 생각한다는 게 보인다. 마치 우리가 편의점에서 음식을 잔뜩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놓듯 이 데구녀석은 내가 준 사료를 모래 속에 파묻어 놓는다.
팔자 좋은 데구들
얼마 전 새롭게 구해준 포치 보금자리 속에서 자빠져 자는 녀석들을 보아라. 말 그대로 자빠져서 잔다. 팔자도 좋다. 심지어 밤도 아니다. 이 칠레 다람쥐 데구 녀석들은 자기가 원하면 잔다. 웃긴게 한 마리만 자지 않는다. 자고 싶으면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을 꼬셔서 같이 잔다. 다가가서 새처럼 짹짹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그루밍을 서로 그루밍을 한다. 그러다가 한 놈이 배에도 해달라고 드러누우면 다른 한 녀석이 배를 배고 잔다. 깔린 녀석은 아마 통수를 제대로 맞았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표정을 살펴 보면, 그냥 무념 무상이다. 앞에 자빠져 자는 녀석 눈동자에 비치는 내 휴대폰을 보아라. 휴대폰을 들이대는대도 "찍으라면 찍으라지"하는 태도. 팔자도 참 좋다.
탈출하는 데구
얼마전부터 슬슬 이녀석들을 밖에 방목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나는 눈뜨자마자 내 방 한 가운데에서 뛰어다니는 녀석들과 눈이 마주쳤다. 얘네는 그냥 나오고 싶으면 벽을 뚫고 나와버린다. 연습도 필요 없다. 그냥 나온다. 진정한 의미의 방목이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이게 한 두 번은 큰일났다 싶지만 여러번 그러니 그냥 그려려니 싶다. 대신 발을 내딛을 때 밑에 데구들이 있나 없나 살피는 수고로움이 늘었다.
방목 연습은 책상 위에서 하고 있다. 내 책상 위에는 잡동사니가 많아서 데구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놀기 좋기 때문이다. 또한 사방이 공중에 떠있어 내 시야를 벗어나는 일도 없다. 즉, 안전이 어느정도 보장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녀석들이 숨을 곳도 책상 위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저기 오른쪽 위를 보아라. 숨어봤자 꼬리가 다 보인다. 아마 지딴에는 자기가 완벽하게 숨은 줄 알겠지.
아임 그루트
나는 나무다. 아니 나는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 콩떡이와 쌀떡이는 나를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소동물들의 한계인가. 왜냐하면 소동물들은 인간의 전체를 한 눈에 담지 못할 것 아닌가. 즉 손과 팔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손과 팔을 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손을 넣어놓으면 꺼내달라고 내 손 위에 올라온다.
그런데 내가 꺼내주지 않고 멍때리고 있으면 내 팔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앞서 말했다. 이 녀석들, 데구는 다른 이름이 칠레 다람쥐다. 즉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탄다. 나무를 잘 타려면 뭐가 필요할까. 강한 손가락힘이나 날카로운 발톱일 것이다. 찍어 오를 수 있는 곡괭이 같은 발톱. 이 녀석들은 곡괭이 같은 발톱을 타고났다. 내 팔을 발톱으로 쿡 찍고 오다다다 타고 올라온다. 그리고 책상위로 올라가 뛰어논다. 요망하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우리집 데구들이 지나가고 나면 팔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는다. 빨갛게 그을려 보이는 자국들이 발톱이 찍은 자국이고 허연 자국들이 타고 올라가다가 긁은 자국이다. 진심으로 싸우면 내가 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하게 되었다.
이상 콩떡이와 쌀떡이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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